본문 바로가기
라이프(Life)/건강 기록

[금주 기록] 금주 39일차 - 금주와 인간관계

by 카레유 2020. 6. 27.

 

2020년 6월 14일

 

금주한지 어느덧 39일차다.

(금연은 512일차다)

 

이틀 전, 꿈속에서 술을 마실 뻔 했다.

잘차려진 안주 상에 소주 한잔이 똘똘똘 따라졌다.

손을 가져가 입에 대려는 순간 느껴지는 강렬한 알콜 냄새.

번뜩 정신이 들어 술잔을 내려놓고 죄책감에 빠졌었다.

물론 죄책감을 느낀 것도 꿈속에서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서도

설마 내가 술을 마실뻔 했던건가, 혹시 진짜 마셨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심란했다.

꿈이 너무 생생해서 놀란 가슴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최근 2주 정도, 술자리에 전혀 참석하지 않고, 집에서만 밥을 먹었다.

술을 마신다는 생각 자체가 1도 나지 않을 만큼 이제 술에서 멀어졌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꿈에서 술잔을 들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술을 마시지 않는게 습관이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 저 깊은 곳에선 술을 먹던 과거가 남아있구나.

방심해서는 안 되겠구나.

 

역시 한치의 예외도 허용해서는 안 되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금연, 금주 모두 처음 2~3일이 가장 힘들고,

그 다음은 일주일이 힘들고,

그 다음은 3주차가 힘들다.

 

3주차가 지나면,

이 때부턴 사실 욕구 때문에 힘들다기 보단,

주변과의 관계나 정신적인 합리화 때문에 힘들다.

 

사람들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고,

오랜만에 누군가 찾아와도 술 한잔 하며 회포 풀기가 힘들고,

이런 인생을 살면 모하나 하는 정신적 합리화의 고된 시간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그것도 웃기다.

 

술 마실 때는 "진정한 우정이네, 너가 참 좋네" 이런 소리를 하다가,

수 틀리면 바로 자존심을 세우며 삿대질을 하고 고성이 오가며, 멱살을 잡기까지 한다.

 

게다가 술이 아니면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관계들도 많다.

한창 술을 마시던 시절에는 너무 약속이 많아서 스케줄 관리가 어려울 정도였는데,

작년에 1년 가량 술을 끊었을 때는,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술이 아니면 만날 수 조차 없는 관계에서 대체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너"랑 술 한잔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술" 마시기 위해 너가 필요해.

그리고 그 너는 꼭 너가 아니어도 돼.

이게 술로 맺어진 관계는 아닐까?

 

겨우 이 정도 관계를 위해 금주를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아닐까?

 

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

술만을 위한 관계를 포기함으로써,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내 인생을 아낄 수 있게 되었다.

 

아낀 시간, 돈, 그리고 정신으로

책이나 영화를 보고, 운동과 산책을 하고, 글을 쓰고 있으며,

조만간 서핑을 즐기고, 나만의 작은 텃밭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차와 패션 등에 관심이 없는 남자가 술을 끊으면 상당한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술이 아니어도 만날 수 있고, 생각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위기가 왔을 때, 누군가는 무너지고, 누군가는 버텨낸다.

무너짐과 버텨냄을 가르는 결정적 요소는 몸의 힘듦 보다는 정신적 합리화가 아닐까?

 

혹자는 이렇게 묻는다.

"그렇게 버텨서 모할건데?"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댓글